말씀묵상 QT나눔

오늘의 말씀묵상 12/10/2020 목요일 [본문: 다니엘 11장 20-35절]

작성자
KCPC ADMIN
작성일
2020-12-10 10:26
조회
81

오늘의 말씀묵상

[본문: 다니엘 11장 20-35절]

20.그 왕위를 이을 자가 압제자를 그 나라의 아름다운 곳으로 두루 다니게 할 것이나 그는 분노함이나 싸움이 없이 몇 날이 못 되어 망할 것이요
21.또 그의 왕위를 이을 자는 한 비천한 사람이라 나라의 영광을 그에게 주지 아니할 것이나 그가 평안한 때를 타서 속임수로 그 나라를 얻을 것이며
22.넘치는 물 같은 군대가 그에게 넘침으로 말미암아 패할 것이요 동맹한 왕도 그렇게 될 것이며
23.그와 약조한 후에 그는 거짓을 행하여 올라올 것이요 소수의 백성을 가지고 세력을 얻을 것이며
24.그가 평안한 때에 그 지방의 가장 기름진 곳에 들어와서 그의 조상들과 조상들의 조상이 행하지 못하던 것을 행할 것이요 그는 노략하고 탈취한 재물을 무리에게 흩어 주며 계략을 세워 얼마 동안 산성들을 칠 것인데 때가 이르기까지 그리하리라
25.그가 그의 힘을 떨치며 용기를 다하여 큰 군대를 거느리고 남방 왕을 칠 것이요 남방 왕도 심히 크고 강한 군대를 거느리고 맞아 싸울 것이나 능히 당하지 못하리니 이는 그들이 계략을 세워 그를 침이니라
26.그의 음식을 먹는 자들이 그를 멸하리니 그의 군대가 흩어질 것이요 많은 사람이 엎드러져 죽으리라
27.이 두 왕이 마음에 서로 해하고자 하여 한 밥상에 앉았을 때에 거짓말을 할 것이라 일이 형통하지 못하리니 이는 아직 때가 이르지 아니하였으므로 그 일이 이루어지지 아니할 것임이니라
28.북방 왕은 많은 재물을 가지고 본국으로 돌아가리니 그는 마음으로 거룩한 언약을 거스르며 자기 마음대로 행하고 본토로 돌아갈 것이며
29.작정된 기한에 그가 다시 나와서 남방에 이를 것이나 이번이 그 전번만 못하리니
30.이는 깃딤의 배들이 이르러 그를 칠 것임이라 그가 낙심하고 돌아가면서 맺은 거룩한 언약에 분노하였고 자기 땅에 돌아가서는 맺은 거룩한 언약을 배반하는 자들을 살필 것이며
31.군대는 그의 편에 서서 성소 곧 견고한 곳을 더럽히며 매일 드리는 제사를 폐하며 멸망하게 하는 가증한 것을 세울 것이며
32.그가 또 언약을 배반하고 악행하는 자를 속임수로 타락시킬 것이나 오직 자기의 하나님을 아는 백성은 강하여 용맹을 떨치리라
33.백성 중에 지혜로운 자들이 많은 사람을 가르칠 것이나 그들이 칼날과 불꽃과 사로잡힘과 약탈을 당하여 여러 날 동안 몰락하리라
34.그들이 몰락할 때에 도움을 조금 얻을 것이나 많은 사람들이 속임수로 그들과 결합할 것이며
35.또 그들 중 지혜로운 자 몇 사람이 몰락하여 무리 중에서 연단을 받아 정결하게 되며 희게 되어 마지막 때까지 이르게 하리니 이는 아직 정한 기한이 남았음이라

[생명의 삶 링크, 본문 요약 : 생명의 삶 본문 요약 보기]

[본문이해]
다니엘에게 환상으로 임한 예언의 말씀입니다. 20-21절에서 안티오쿠스 3세, 마그누스의 후계자 셀류쿠스 4세, 필로파토르의 강압 통치가 있지만 몇 날이 못 되어 죽고 맙니다. 그의 뒤를 이어 22절에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가 왕위를 속임수로 왕위를 찬탈합니다. 아버지 안티오쿠스 3세가 로마의 스키피오 장군에게 패하여 체결된 조약에 따라 로마에 볼모로 있던 에피파네스는 선대왕 셀류쿠스 4세의 막내 아들인 왕자를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귀국해서 부하 안드로티쿠스를 시켜 왕자를 살해하고, 살해범으로 자기 부하를 지목하여 처형시킨 후에 왕위에 오릅니다. 내부 사정을 모르는 백성들이 볼 때는 아무 일도 없이 정당한 방법으로 보이겠지만, 성경의 기록처럼 교활한 속임수로 왕위를 찬탈한 것입니다.

22-24절에서는 속임수로 왕위를 찬탈한 에피파네스는 제1차 애굽 원정을 떠나서 승리를 거둡니다. 전쟁에서 승리한 후에 전리품과 노략물을 백성들에게 나누어 줌으로 백성들의 민심을 얻습니다. 본문에 등장하는 ‘넘치는 물 같은 군대’란 이집트의 왕 톨레미 6세, 필로메토르의 군대를 가리키며, 에피파네스에 의해 패배합니다.

22절 이후의 내용들을 이해하려면 에피파네스와 이집트의 톨레미 6세의 관계를 이해해야 합니다. 간단하게 세계사에 기록된 배경을 말씀드립니다. 당시 이집트는 에피파네스의 누이인 클레오파트라가 아들 톨레미 6세, 필로메토르를 대신하여 섭정 중이었습니다. 그런데 톨레미 6세가 장성하여 18세가 되자 팔레스타인 땅을 되찾기 위해 전쟁을 일으켜서 팔레스타인 땅 가자(Gaza)와 이집트의 펠루시움(Pelucium)에서 전투가 벌어집니다. 이 전투에서 에피파네스가 이집트 왕 톨레미 6세를 포로로 잡고 시리아로 끌고 가면서 대승을 거둡니다. 그러자 이집트에서는 왕의 부재로 인하여 새로운 왕을 옹립하는데 왕의 동생 유에르게테스입니다. 유에르게테스가 왕위에 오르면서 톨레미 7세가 되자,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는 계략을 세워 톨레미 7세와 조약을 맺습니다. 다시 왕위를 되찾을 수 있도록 해 줄 테니 동맹관계를 맺자는 것입니다. 조약을 받아들인 톨레미 7세가 에피파네스의 도움으로 이집트로 돌아가게 되고 다시 왕위를 되찾습니다. 그런데 왕으로 복귀하게 되자 마자 약속을 깨고 오히려 군대를 일으킵니다. 하지만 이집트의 군대가 공격하기도 전에 소식을 전해 들은 에피파네스가 선제 공격을 하며, 이집트로 진격을 하려고 시도합니다. 그런데 그 때에 로마에서 대군을 일으켜 에피파네스의 군대를 물리치고 그를 포로로 잡고는 군대를 당장 돌려서 시리아로 철군하라고 합니다. 에피파네스는 결국 애굽 원정을 포기하고 치욕과 수치를 당한채 시리아로 되돌아가는 길에 예루살렘을 거쳐서 돌아가게 됩니다. 그는 수치와 패배의 분노를 예루살렘에 풀어서 유대인 수만명을 안식일에 죽이고, 성전에 들어가서 제사를 폐지하고, 제우스 신상을 놓아두고 돼지를 희생제물 삼아 제사를 드리는 등등 성전과 하나님을 모독하는 일을 저지르게 됩니다.

25-28절은 에피파네스의 제2차 애굽 침공을 기록합니다. 군대의 규모는 이집트 군대가 더 컸지만 에피파네스의 계략과 이집트 내에서의 자중지란으로 승리를 거둡니다. 본문에서 “그의 음식을 먹는 자들”이란 이집트 톨레미 6세의 지휘관들을 의미하며, 그들이 왕을 멸한다는 의미는 히브리 원문상의 표현은 죽이는 것이 아니라, 몇가지로 해석이 가능한데 스스로 내분을 일으켰거나, 지휘관들이 적극적으로 전쟁에서 돕지 않거나, 또는 역모를 도모했을 것이라고 유추할 수 있습니다. 어떤 유추가 맞는지는 정확하지 않지만 결국 이집트는 패하게 되고 왕의 부하들의 행동이 패배의 이유가 된 것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전쟁에서 승리한 에피파네스는 톨레미 6세를 포로로 잡아 갑니다. 그리고 위에서 설명했듯이 둘 사이에 조약이 맺어지지만 역사적 결과는 톨레미 6세가 조약을 깨고 동생과 연합해서 다시 군사를 일으키므로 거짓말을 한 셈입니다.

29-31절은 에피파네스의 마지막 이집트 침공인 제3차 애굽 원정에 대한 기록입니다. 본문에 등장하는 “깃딤”이란 고대 지중해의 키프로스(Cyprus) 섬(신약의 구브로 섬)을 지칭하는 표현입니다. 이 섬은 팔레스타인과 애굽에 가까이 있었기 때문에 로마에서는 군대를 주둔시켰습니다. “깃딤의 배”라고 했으니 당시에 여기에 위치한 로마의 해군이며, 당시에 로마의 포필리우스 라에나스 장군이 이끌고 있었습니다. 전해지는 기록에 의하면 안티오쿠스를 사로 잡은 라에나스 장군은 에피파네스가 서 있는 자리에서 원을 그리고, 본국으로 돌아갈 것인지를 그 원 밖으로 나가기 전에 결정하라고 압박을 하면서 결정을 하지 않고 나가면 처형할 것이라고 협박했다고 합니다. 결국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는 철군하게 되고, 패잔병을 끌고 돌아가는 길에 예루살렘 성전 모독 사건이 벌어지게 된 것입니다.

32-35절은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의 탄압에 대해서 일부 백성들 가운데 하나님을 아는 의인들이 항거하여 투쟁하지만 때가 찰 때까지 칼날과 불꽃과 사로잡힘과 약탈을 당하는 등 연단과 고난을 당할 것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연단을 통해서 오히려 하나님을 아는 백성들이 정결하게 되어 마지가 때까지 이른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본문에 “하나님을 아는 백성”들이란 셀류쿠스 왕조의 통치와 정책에 반대하는 자들이나 경건을 추구하는 자들로 유대의 저항 세력을 말합니다. 역사적으로 에피파네스는 매일 드리는 제사를 폐지하고, 성전의 제단에 제우스 신상을 안치시켜서 사람들에게 숭배하게 강요하며, 할례를 금지시키고, 율법의 소유나 사본으로 복사하는 것을 금지시키고, 안식을 및 종교 행사를 금지시켜서 이를 어기는 누구든지 사형에 처하게 했습니다. 이러한 극심한 박해가 3년이나 지속되었으니 결국 저항 세력의 봉기를 불러 일으키게 되어 마카비 독립전쟁이 발발하게 된 것입니다. 결국 독립전쟁에 성공하여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에 의해 더럽혀진 성전을 BC 164년에 다시 되찾고 거룩하여 하나님께 봉헌하는 기쁨을 누립니다. 그 날을 기념하여 유대인들은 오늘날까지 유대 종교력으로 기슬르월 9월 25일(양력으로는 12월달)에 수전절(하누카)로 지키고 있습니다.

[묵상 및 적용]
오늘 말씀을 묵상하면서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에 의한 박해의 내용들이 등장합니다. 그런데 극심한 박해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아는 백성은 강하여 용맹을 떨치리라”라는 말씀이 가슴에 와 닿았습니다. 성경은 용맹을 떨친다고 했지 그들의 저항이 최종적인 승리를 가져온다고 서술하지 않고 있습니다. 도리어 칼날과 불꽃과 사로잡힘과 약탈을 당하게 될 것이고 몰락할 것이라고 어두운 미래를 서술하고 있습니다.

이 본문의 말씀을 접하면서 “왜 하나님께서 박해와 몰락을 허용하셨을까?”라는 궁금증이 생겼습니다. 그런데 35절 말씀에 이 궁금증의 해답의 실마리가 적혀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다니엘 11장 35절에 기록된 “그들 중 지혜로운 자 몇 사람이 몰락하여 무리 중에서 연단을 받아 정결하게 되며 희게 되어 마지막 때까지 이르게 하리니”라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보자 마자 욥기 23장 10절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같이 되어 나오리라”라는 말씀의 욥의 대답이 떠올랐습니다. 다니엘서와 욥기의 두 성경구절의 공통점은 연단과 단련을 통해서 정결하게 되고, 희게 되고, 순금같이 깨끗해진다는 것입니다.

철은 “담금질”과 “벼름질”을 통해서 길들인다고 합니다. 철을 뜨거운 불 속에 넣었다고 갑자기 차가운 물속이나 기름 속에 담가서 냉각시키는 것이 “담금질”입니다. 그런데 담금질만 한다고 쇠가 단단해지고 가치가 있는 강철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차가운 물속이나 기름 속에 갑자기 들어갔다 나온 쇠가 온도 차이 때문에 변형이 일어난 것을 망치로 때려서 골고루 펴주거나 다듬어 주는 것이 “벼름질” 입니다. 이렇게 담금질과 벼름질을 통해서 단단해지고 가치를 지닌 강철이 되고 훌륭한 도구로 사용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에게 허용하시는 고난, 박해, 연단, 그리고 심지어 몰락을 경험하는 것들은 쇠를 더 단단하게 만들기 위해서 담금질을 하고 벼름질을 하는 것과 같습니다. 물론 고난을 당하고, 연단 가운데 힘들어 하고, 몰락을 경험하면서 죽을 것만 같은 상황이 계속되는 것은 너무 너무 힘들고 어렵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 연단과 고난, 몰락의 과정을 극복하고 이겨낼 수 있겠습니까?

오늘 본문에 보니 두 가지 소망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첫째는 32절의 기록처럼 “오직 자기의 하나님을 아는 백성”은 강할 것이라는 말씀이 위로와 용기, 소망이 됩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자가 견딜 수 있고, 극복할 수 있고, 끝까지 인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참 위로와 소망, 용기는 세상이 주는 것들에 있지 않고 오직 하나님께 있기 때문입니다. 둘째로는 35절에 “아직 정한 기한이 남았음이라”라는 말씀에 소망이 있습니다. 이 말씀은 아무리 고난과 연단, 몰락이 있어도 이것들이 지나가고 끝나는 마지막 때가 반드시 있다는 것입니다. 끝이 있다면 인내하면서 기다리면서 회복을 소망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현재 고난과 연단, 좌절과 몰락의 길에 서 있는 것 같으십니까? 그렇다면 이 연단의 과정을 거치고 나서 정결하게 되고, 순금처럼 순수하고 깨끗하게 다시 태어나는 “그 때”가 반드시 있음을 주 안에서 믿음으로 받으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기도 응답의 아버지 죠지 뮬러의 믿음의 고백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위로가 되기를 원합니다.

“믿음은 가능성의 영역에서는 작동하지 않는다. 인간적으로 가능한 일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 돌려지지 않는다. 믿음은 사람의 능력이 끝나는 곳에서 시작된다.” -죠지 뮬러-

[기도]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 우리의 형편과 처지, 가야할 길을 오직 하나님만이 아시오니 우리를 단련하신 후에 정금으로 다시 태어나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게 하옵소서. 믿음으로 우리를 굳건하게 세워 주옵소서. 우리 눈으로 보지 못하는 것을 볼 수 있는 믿음의 눈을 허락 하옵소서. 현재의 아픔과 고난, 질병과 연약함이 지난 간 후에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낼 기쁨과 회복, 승리를 믿음으로 볼 수 있도록 인도 하옵소서.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송호준목사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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