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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묵상 10/1/2020 목요일 [본문: 예레미야 40장 1-6절]

작성자
KCPC ADMIN
작성일
2020-10-01 12:02
조회
50


 

오늘의 말씀묵상

[본문: 예레미야 40장 1-6절]
1.사령관 느부사라단이 예루살렘과 유다의 포로를 바벨론으로 옮기는 중에 예레미야도 잡혀 사슬로 결박되어 가다가 라마에서 풀려난 후에 말씀이 여호와께로부터 예레미야에게 임하니라
2.사령관이 예레미야를 불러다가 이르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곳에 이 재난을 선포하시더니
3.여호와께서 그가 말씀하신 대로 행하셨으니 이는 너희가 여호와께 범죄하고 그의 목소리에 순종하지 아니하였으므로 이제 이루어졌도다 이 일이 너희에게 임한 것이니라
4.보라 내가 오늘 네 손의 사슬을 풀어 너를 풀어 주노니 만일 네가 나와 함께 바벨론으로 가는 것을 좋게 여기거든 가자 내가 너를 선대하리라 만일 나와 함께 바벨론으로 가는 것을 좋지 않게 여기거든 그만 두라 보라 온 땅이 네 앞에 있나니 네가 좋게 여기는 대로 옳게 여기는 곳으로 갈지니라 하니라
5.예레미야가 아직 돌이키기 전에 그가 다시 이르되 너는 바벨론의 왕이 유다 성읍들을 맡도록 세운 사반의 손자 아히감의 아들 그다랴에게로 돌아가서 그와 함께 백성 가운데 살거나 네가 옳게 여기는 곳으로 가거나 할지니라 하고 그 사령관이 그에게 양식과 선물을 주어 보내매
6.예레미야가 미스바로 가서 아히감의 아들 그다랴에게로 나아가서 그 땅에 남아 있는 백성 가운데서 그와 함께 사니라

[본문이해]
예레미야 39장에서 예루살렘이 멸망한 기록을 다루고 있다면, 40-43장은 예루살렘 멸망 이후의 상황 전개에 대해서, 44-45장은 예루살렘이 멸망하게 된 이유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본문의 내용은 바벨론 왕 느브갓네살 군대의 공격으로 예루살렘이 파괴되고 시드기야와 예레미야, 그리고 백성들이 포로로 끌려 가는 도중에 바벨론 군대의 사령관 느부사라단이 포로들 사이에 있는 예레미야를 발견합니다.

특히 본문 2-3절에서 예루살렘 멸망의 의미를 이스라엘의 적국인 바벨론의 사령관의 입을 통해서 전해지고 있습니다. 멸망의 원인은 3절의 “너희가 여호와께 범죄하고 그 목소리를 청종치 아니하였으므로”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2절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곳에 이 재앙을 선포하시더니”라는 말씀 속에 있습니다. 느부사라단의 말은 단순히 적국의 사령관의 흘려 지나가는 말이 아닙니다. 예루살렘의 멸망이 선지자 예레미야가 아닌 이교도인 바벨론의 사령관의 입을 통해 전해지는 것은 아이러니(Irony)이지만, 성경신학적인 측면에서는 언약적 관점으로 이교도들에게도 하나님의 공의와 예루살렘의 심판의 원인이 명백하게 이해되고 있었음을 성경이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4-5절에 느부사라단은 선지자에게 몇 가지 길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바벨론 땅으로 가서 자기와 함께 편하게 지내자는 것이며, 둘째는 예레미야가 원하는 곳으로 가는 것이며, 셋째는 원하는 곳 중에서 그다랴가 통치하고 있는 유다 성읍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예레미야에게 선택의 기회를 주는 본문의 내용의 이면에서 하나님을 알지만, 믿지 않는 사람과 하나님을 믿는 사람의 시대와 역사를 바라보는 시각과 관점의 차이를 엿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알지만 믿지 않는 느부사라단은 선지자에게 세 가지 선택의 기회가 있다고 제시하지만, 하나님의 선지자에게는 결국 단 하나의 길외에는 없습니다. 그것은 바로 사명을 감당하는 길입니다. 사명자로서 사명을 다하는 것, 고난의 감내하는 것은 선택이 아니요, 반드시 감당해야 할 당연한 의무이기 때문입니다.

[묵상 및 적용]
본문의 내용을 묵상하면서 마음에 계속해서 남는 생각은 “어떻게 그리도 자주 잊어 버릴 수 있지?”라는 한탄조의 질문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았기 때문에 재앙이 임하고 나라가 멸망한다는 역사적 경험들과 사실들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우상을 섬기거나, 이방신을 좇거나,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하지 않으면 어김없이 어려움이 닥친다는 사실을 조상때부터 온 몸으로 겪어왔던 민족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잊어 버릴 수 있었을까?”라는 생각이 묵상하는 내내 마음에 담겨졌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나는 어떨까?”

그런데 우리도 그들과 똑같이 잊어 버리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21세기를 사는 기독교인들에게도 예레미야 시대에 유대인들에게 요구되었던 것과 똑같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것이 요구되기 때문입니다. 순종하지 않았기 때문에 전쟁이 일어나고, 천재지변이 생기고, 코로나로 인한 전염병이 창궐한 것이라고 숙명론적으로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39장의 예루살렘의 멸망이나 오늘 본문의 이교도 사령관 느부사라단의 말을 통해서 깨닫게 되는 것은 ‘유다 사람들이 좇았던 이방신과 우상처럼 21세기에 우리들도 이 시대의 우상과 이방신을 좇았던 것은 아니였는가?’라는 자성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시대를 살아 가면서 또는 한 인간의 인생을 살아 가면서 “지금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과 멀어지게 하는 우리 시대의 ‘이방신’과 ‘우상’은 무엇인가?”를 개인의 묵상 속에서 깊이 생각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본문을 묵상하면서 떠오르는 또 하나의 이슈는 예레미야의 선택입니다. 선지자는 사명자입니다. 그러므로 사명자로서 유다 성읍으로 돌아가서 하나님의 뜻을 전하는 선지자적인 삶을 선택하는 것은 당위적이면서 옳다라고 보여집니다.

하지만, 정말 예레미야가 남아 있는 자기 백성으로 돌아가서 말씀을 선포하는 상황이 어렵지 않고 쉬었을까?라는 생각이 얼핏 들었습니다. 왜냐하면 그가 돌아가는 유다의 남은 백성들이 처한 환경은 전쟁에서 패하여 파괴된 땅으로 하나님의 징계를 당한 죄악된 곳입니다. 수치스럽고 혐오스러우며 암울한 곳이 바로 지금 예레미야가 돌아가는 유다 땅입니다. 또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입장에서 보면 왕과 많은 사람들이 사슬에 묶여 바벨론으로 끌려가는데 적대국의 사령관의 배려로 풀려난 예레미야는 자칫 잘못하면 적대국에 편에 서있는 ‘친바벨론주의자’라고 여겨져서 쉽게 받아 들여지지 않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어떤 중요한 결정을 앞두고 여러가지 생각을 합니다. 이리 재보기도 하고, 저리 재보기도 하고, 이익을 가늠해 보기도 하고, 닥치게 될 어려움을 예측해 보기도 합니다. 그래서 저도 예레미야의 상황을 고려해야 선지자가 돌아가는 것이 쉬었을까? 어려웠을까? 어떤 손실이 있을까? 무슨 유익이 있을까?라는 생각을 해 본 것입니다.

하지만, 묵상의 결론은 너무나 단순하면서 명백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데에 있어서 쉽고 어려움, 이익이나 손해, 사람들의 반응이나 결과가 무슨 소용이 있을까?” 였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르고 사명을 감당함에 있어서는 환경이나 상황이나 조건이나 여건이 아무 차이가 없기 때문입니다. 찬송 ‘부름받아 나선 이 몸”이라는 찬송가의 가사에 표현되어 있듯이 ‘아골골짝 빈들에도 복음들고 가오리니’라는 저자의 고백처럼 사명을 감당하는 선지자에게 척박하고 절망스럽기 그지 없어 보이는 유다 땅으로 돌아가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묵상의 생각이 여기에 이르니 2020년 10월을 살아갈 우리의 삶 속에 산재되어 있는 문제나 조건, 상황이나 어려움들이 하나, 둘씩 걷혀지기 시작했습니다. 문제가 여전히 있고, 어려움이 있어도 하나님이 주신 감당해야 할 사명이 있는 사람에게는 문제는 문제가 아니요, 어려움은 어려움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어려움과 문제가 없는 곳에 어찌 사명이 존재하겠습니까?

뿐만 아니라, 예레미야는 자신이 처한 환경이 반드시 회복될 곳이며, 다시금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을 섬길 은혜롭고 축복된 땅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이처럼 미래적 소망의 현재적 믿음을 소유한 사명자라면 눈에 고이고 고여서 슬픔과 비통함 중에 그 눈이 썩어 들어갈 것만 상황 속에서 “회복”이라는 소망을 한시도 잊은 적이 없었을 것입니다.

10월의 첫날의 묵상을 마치면서 우리 모두에게 예레미야처럼 부르심에 응답하는 사명의 사람으로서의 믿음의 자신감이 있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어두워져가는 이 세상 가운데서 절망하고 체념하기 보다는 우리를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 삼으신 하나님의 뜻을 마음에 새기고 세상을 밝히는 사명, 정결케 하는 사명을 감당하는 주의 백성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기도]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주님! 바울 사도가 고백한 것처럼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어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라는 고백을 하기를 원합니다. 주의 뜻을 깨닫고 발견한 사명자가 되기를 원합니다. 일터와 직장에서, 가정에서, 삶 속에서, 그리고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살게 하소서.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게 하시고 남이 보지 않고 인정해 주지 않아도 주의 길을 묵묵히 걸어가는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소서. 오늘도 나와 함께 하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송호준목사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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