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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묵상 8/25/2020. 화 [본문: 로마서 14장 1-12절]

작성자
KCPC ADMIN
작성일
2020-08-25 19:29
조회
50

오늘의 말씀묵상

[본문: 로마서 14장 1-12절]
1. 믿음이 연약한 자를 너희가 받되 그의 의견을 비판하지 말라
2. 어떤 사람은 모든 것을 먹을 만한 믿음이 있고 믿음이 연약한 자는 채소만 먹느니라
3. 먹는 자는 먹지 않는 자를 업신여기지 말고 먹지 않는 자는 먹는 자를 비판하지 말라 이는 하나님이 그를 받으셨음이라
4. 남의 하인을 비판하는 너는 누구냐 그가 서 있는 것이나 넘어지는 것이 자기 주인에게 있으매 그가 세움을 받으리니 이는 그를 세우시는 권능이 주께 있음이라
5. 어떤 사람은 이 날을 저 날보다 낫게 여기고 어떤 사람은 모든 날을 같게 여기나니 각각 자기 마음으로 확정할지니라
6. 날을 중히 여기는 자도 주를 위하여 중히 여기고 먹는 자도 주를 위하여 먹으니 이는 하나님께 감사함이요 먹지 않는 자도 주를 위하여 먹지 아니하며 하나님께 감사하느니라
7.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8.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
9. 이를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셨으니 곧 죽은 자와 산 자의 주가 되려 하심이라
10. 네가 어찌하여 네 형제를 비판하느냐 어찌하여 네 형제를 업신여기느냐 우리가 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리라
11. 기록되었으되 주께서 이르시되 내가 살았노니 모든 무릎이 내게 꿇을 것이요 모든 혀가 하나님께 자백하리라 하였느니라
12. 이러므로 우리 각 사람이 자기 일을 하나님께 직고하리라

[본문이해]
바울에게 있어서 연약하 자란 육신이나 정신적으로 약한 사람이 아니라, 믿음으로 하면 어떤 일이라도 할 수 있다는 면에서 자유함을 누리지 못하는 사람이며, 양심의 자유를 누리지 못하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약한 자들은 믿음이 주는 자유를 누리지 못합니다. 특별히 구약 음식법에 따라 고기나 채소를 먹는 문제(롬 14:2), 특별한 날을 거룩한 날로 지키는 문제(롬 14:5), 그리고 내일의 본문에 나오는 포도주를 마시는 문제(롬 14:21) 등에 있어서 믿음 안에서의 자유를 충분하게 이해하지 못하고 누리지 못하는 사람들입니다. 즉 요한복음 8장 32절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라는 말씀처럼 진리 안에서의 자유를 누리지 못하는 자들입니다.

약한 자들의 반대 개념에 속한 자들은 강한 자라고 한다면, 이들은 은총의 본질과 범위를 잘 이해함으로 먹는 문제, 마시는 문제, 특별한 날 지키는 것에 있어서 자유함을 누리는 자들입니다.

그런데 이 두 부류의 사람들이 처한 문제는 진리와 본질적인 것에 대한 문제들 보다 서로 반목하고 정죄하는 문제입니다. 서로 상대방의 행동에 이맛살을 찌푸리고 멸시와 정죄의 눈빛으로 바라보는 경향이 있다는 것입니다.

본문을 통하여 바울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누구의 의견이 옳다가 아닙니다. 구원에 관계된 교리의 문제이거나, 대속의 죽음과 구원과 부활 등의 문제에 있어서는 단호해야 하지만, 비본질적인 문제에 있어서 강한 자들이나 약한 자들이나 서로 정죄하기 보다는, 서로 용납하고 받아들이며 그리스도인의 사랑을 실천하라고 권면하는 것입니다. 강한 자들과 약한 자들이 서로 개인적인 확신들과 양심적인 판단들을 정죄하거나 고쳐 주려고 하지 말고 서로 사랑으로 포용하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약한 자들도, 강한 자들도 모두 주를 위하여 살기 때문입니다. 6절 “날을 중히 여기는 자도 주를 위하여… 먹는 자도 주를 위하여… 먹지 않는 자도 주를 위하여…”라는 말씀과 8절 “살아도 주를 위하여…죽어도 주를 위하여…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라는 말씀에서 알 수 있듯이 성도의 나아가야 할 방향은 본질이신 예수 그리스도임을 밝히고 있는 것입니다.

[묵상 및 적용]
‘아디아포라’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 의미는 “상관없는 또는 중요하지 않은 것들”라는 의미로 철학자들에 의해서 사용되었던 말입니다. 신약성경에 직접 이 단어가 사용되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오늘의 본문의 배경에 바로 ‘아디아포라’ 문제가 있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먹고 마시는 문제와 날짜 지키는 문제 등의 ‘아디아포라’ 비본질적인 문제를 본질적인 죽음(8절),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9절), 하나님의 심판대(10절) 등의 신학적 이슈와 연결하고 있습니다. 바울이 이렇게 비본질적인 주제를 본질적인 것으로 연결시키는 것은 서로 간의 정죄가 아니라, 사랑과 용납과 포용 때문입니다.

예전에 “목사님, 술 마시고 담배 피는 것이 죄입니까?”라는 질문을 했던 사람이 있었습니다. 질문한 사람은 술 마시고 담배 피는 것은 성경이 명확하게 말하고 있지 않다고 말하면서 곤란한 질문으로 도전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대답해야 했을까요?

신학적으로, 성경적으로, 논리적으로 설명을 하는 것이 옳을까요? 아니면 현대 사회의 흐름에 따라 마음이 넓은 듯이 수긍해 주는 것이 옳을까요? 만약 글을 쓰거나 성경신학적인 입장을 밝혀야 하는 자리라면 신학적으로, 성경적으로 대답을 해야 합니다. 하지만 아무리 잘 설명해도 질문했던 사람의 마음을 시원케 해 주시는 못할 것입니다.

‘상대방을 설득하는 12가지 방법’의 인관관계론 중에 데일 카네기는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논쟁으로는 이길 수 없다. 지면 그냥 지는 것이고, 이겨도 지는 것이다. 만일 여러분이 상대방 논리의 허점을 지적해 상대방을 묵사발이 될 정도로 이겼다 치자. 상대가 제정신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해 냈다고 치자. 그래서 어떻단 말인가? 여러분 기분이야 좋겠지만 상대방은 어떻겠는가? 여러분은 상대방에게 열등감을 느끼게 했고, 상대방의 자존심을 구겨버렸다. 상대방은 여러분의 승리에 이를 간다”라는 말입니다.

정말 그런 것 같습니다. 음주나 흡연 문제로 질문했던 사람의 마음 속에 “성경이 모호하게 말하는데 왜 음주와 흡연이 죄라고 말하십니까?”라고 도전정신과 뒤틀린 마음이 있었다면 아무리 논쟁에서 제가 이겨도 쓸모 없는 소모전이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한 지체로서 그리스도의 몸에 있는 성도들끼리 논쟁하면서 누구는 이기고, 누구는 지는 식의 소모전은 서로에게 상처만 줄 뿐입니다.

교회 바닥의 카펫 색깔이 갈색이면 어떻고 회색이면 어떻습니까? 교회 난간의 페인트 색이 녹색이면 어떻고 검은색이면 어떻습니까? 교회 찬양대가 겨울에 시원한 파란색 가운을 입고 여름에 더워 보이는 빨간색 가운을 하면 어떻습니까?

오늘 바울이 본문의 먹는 문제와 특별한 날을 지키는 문제의 이슈를 통해서 논란과 다툼이 있기 보다는 본질적으로 더 중요한 것에 집중할 것을 권면하고 있듯이 우리 삶도 똑같습니다. 지난 주일 권혁천목사님의 설교 중에 말씀하신 내용을 다시 확대해서 적용해 본다면, “돈을 벌지 못하거나 잃어버릴 수 있습니다. 직장을 잃어버릴 수도 있습니다. 아프거나 병에 걸려 고생하고 힘들고 죽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다 잃어버리고 놓쳐도 결코 잃어버리거나 놓쳐서는 안될 것은 바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인생의 마지막까지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사나 죽으나 우리의 주의 것입니다”라는 바울의 고백이 이제는 우리의 고백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은 주님과 연결된 끈이 느슨하거나 희미해진 것이 있다면 어떻게 다시 연결할 수 있는지 기도하며 묵상하고, 믿음으로 담대하게 실천할 수 있는 삶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기도]
사랑의 주님, 내 입술과 마음으로 다른 사람을 정죄하였다면 용서하여 주옵소서. 해바라기가 햇빛을 향해 늘 움직이듯이 주님만 바라보고 주의 뜻을 헤아려 알 수 있도록 저를 인도하여 주옵소서. 이제라도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게 하시고, 내 직장이나, 일터나, 학교에서, 가정에서, 그리고 만나는 이웃들과 관계에서 주님의 흔적이 나타나는 저의 모습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주와 동행하고 주만 바라보기를 바라며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송호준목사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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